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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공연/전시

후기 - 미디어아트비엔날레


10월 12일 디매디 휴강시간을 이용해서 제7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에 다녀왔다.(감상문 제출이 과제기도 하고..)

미디어 아트라고 하면 기껏해야 예전에 보았던 고 백남준씨 작품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장르였고, 

실제 가보니 확실히 내가 여태 보아왔던 일반 미술전시와는 다른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국내 전시회는 올해 초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본 지구 특별전’이었는데 

그 전시회만 하더라도 작품을 가져다 놓고 관객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식의 지극히 평범한 전시였고, 

또 사진전이라 더 그랬었는지 몰라도 굉장히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느낌이 강했었다.(사진전 리뷰는 http://recipeforme.tistory.com/61)

하지만 이번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좀 더 관객과 소통하고, 기발하며, 상상력이 자극되는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전시회였다. 

평소에 도슨트가 있는 전시회에 가게 되면 도슨트를 따라 한 바퀴 돌고 처음부터 다시 도슨트 없이 감상을 하는데, 

내가 시립미술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도슨트가 1층 설명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던 중이라 2층부터 같이 돌고 

그 후에 다시 아래로 내려와 천천히 돌아보았다. 

도슨트 시간에는 예고학생으로 보이는 단체로 견학을 온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미술관이 정신이 없었는데, 

다행히 다시 감상할 때는 학생들이 다 가줘서 조용하게 감상을 할 수 있었다.

1층 전시품은 대체로 내가 이해하기 난해한 작품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로비쪽에 전시 돼있던 아델 압데세메드의 ‘기억’이란 작품은 

원숭이가 끊임없이 ‘투치’와 ‘후투’라는 단어를 흰 벽에 반복해서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볼 때는 소리가 거의 안 들렸는데 알고 보니 잠깐 소리를 줄여 놓았던 거라서, 

내가 전시회를 빠져 나갈 때쯤엔 엄청나게 시끄러운 ‘딱-딱-딱’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고 있었다. 

후투와 투치는 르완다의 두 부족으로 이들 간의 분쟁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고 한다. 

아델 압데세메드는 원숭이의 철자붙이기를 통해 의미 없는 반복적인 전쟁을 비난하고 또 시끄러운 소음으로 하여금 

관객들에게 이 같은 학살이 불쾌하다는 기억을 남게 한다.  

1층에서 내 시선을 끌었던 또 다른 작품은 틸 노박의 ‘원심력체험’이었다. 

이 작품은 7개의 영상을 이어붙인 것인데, 하나의 영상에는 하나의 놀이기구가 작동되는 모습이 담겨있다. 

각 놀이기구는 평범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변하여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마치 미래의 놀이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영상 맞은편에는 놀이기구의 설계도면을 그려놓았는데, 설계도면 역시 허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아마추어용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에 CG를 더해 이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실제와 가짜가 분간 되지 않는 영상을 통해 우리 사회를 패러디하고 있다. 

실제로 현시대에는 기술의 발전이 너무나 빨라서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현실화 되는 것이 많다보니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상상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은 상상에 불과한 저런 놀이기구들도 몇 년 후엔 정말 현실이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도시를 뒷배경으로 갖가지 야채들을 온몸에 테이핑하고 있는 퍼포먼스를 담은 이 작품은 데니스 페저의 ‘수직적 착란’. 

작가는 건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이러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솔직히 작품설명을 읽어도 작품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는 순간 너무 신기해서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전시 된 작품들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작품 중 하나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2층의 전시관에서 가장 처음 본 작품은 데이비드 보웬의 ‘파리트윗’이다. 

이름 그대로 파리가 보내는 트위터인데, 여러 마리의 파리가 키보드가 설치된 작은 구형 아크릴 구조물 안에 가둬져 있고, 

파리가 특정키보드위에 앉으면 그 자판을 인식해 트위터에 글씨가 적힌다. 

이렇게 140자가 채워지거나 파리가 키보드의 엔터자판을 작동시킬 때마다 트위터가 하나씩 올려지게 된다. 

당연하게도 파리가 보내는 트윗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단순히 철자들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 트윗이다. 

현대사회에는 소셜 미디어가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소외감에서 벗어나고자 특별한 목적 없이 트위터를 시작하고 

또 큰 의미 없는 트윗 글을 무분별하게 작성하고는 하는데 파리 트윗을 보고 있자니 

작가가 파리들 말고도 의미없는 트윗을 날리고 있는 대중들을 비꼬고자 하는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료타 쿠와쿠보의 ‘점·선·면’은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전시품이었다. 

어둠속에 설치된 이 작품은 불을 밝힌 모형열차가 레일 위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주위의 사물을 비추고 이 사물이 뒷벽에 사영되어 

큰 그림자를 맺히게 하는 작품으로, 정작 움직이는 것은 모형열차지만, 

겉으로 보기엔 여러 가지 사물들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또 기차 주위의 사물은 사실 간단한 잡동사니들이지만 그림자를 통해 나타나는 것들은 사람들, 건물, 터널, 숲 같은 이미지로 변환되었다. 

도슨트와 함께 있을 때는 짧게 보고 지나갔는데, 다시 와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니 어둠속에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신비함도 느껴지고, 열차가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에서 어떤 여유가 느껴져서 잠깐이나마 전시회 관람 도중 잠깐의 휴식을 가지게 한 작품이었다.

영상 작품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플로리스 카이크의 작품들이었다.

세 개의 영상이 연속해서 나오고 있었는데 각각 ‘전자 목’, ‘악성금속증’, ‘생명의 기원’ 이었다.

세 영상 모두 CG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기괴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 

전자목에서는 새로운 곤충의 한 종류로 전자목(order)를 제시하고 트랜지스터, 전선 등으로 이루어진 곤충들을 다큐 형식으로 보여준다. 

악성 금속증에서는 새로운 병을 제시하는데 바로 몸과 기계가 뒤섞인 모습의 악성급속증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기원에서는 손가락이나 눈 등의 분절난 신체조각들이 각각 하나의 개체를 이루어 어떤 건축물을 세우려고 하지만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 작품 모두 내용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이상하지만, 형식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차용하여 차분한 배경음악과 절제된 

내레이션이 곁들여져 있어서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동시에 왠지 모를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전자목으로, 자연과, 가장 비자연적인 기계를 섞어 놓음으로써 생기는 괴리감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생겨난 위트가 무척 재미있게 다가왔다. 

파리 트윗과 더불어 또 하나의 소셜 네트워크와 결합된 작품으로 에브리웨어(방현우&허윤실)의 ‘크로우 드로우’가 있었다. 

이 작품은 실제로 웹과 스마트 폰을 통해 세계의 사람들이 가상세계에 점을 하나씩 찍어서 실제 그 정보를 바탕으로 페인트 공을 쏘아 

벽화를 그리는 작품으로 작가는 틀만을 마련해 놓고,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존의 작품들은 작가가 모든 것을 제작하고, 그려서 내놓으면 관객들은 그것을 보고 느끼는데서 그치지만 

이 작품은 관객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 되었다.

3층 작품들은 다른 층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내 관심을 끌었던 작품은 다른 층과 비슷하게 많았다.

먼저 지문의 ‘나무좀 25마리, 나무, 마이크, 사운드 시스템’은 완벽하게 내 예상을 깬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나무좀들이 나무를 갉아먹는 장면을 녹화하고 그 소리를 증폭하여 녹음한 것인데, 녹화된 영상을 볼 때만 해도 

시각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보이지도 않았고 나무좀 소리는 사실 별 기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를 듣기 위해 헤드폰을 껴보니 나무를 갉아먹는 소리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만큼 신비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슨트가 이 작품은 보기 전에 먼저 들어본다면 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보고난 후에 들어도 충분히 반전을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센서를 이용한 하이브의 ‘사이’도 신기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작품 주위로 사람이 다가오면 센서가 이를 인식하여 관객들 방향으로 다가오는 발자국을 소리와 함께 찍어 보여준다. 

이것이 발자국뿐임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여러 명이 함께 서 있었을 때는 재미있게 느껴졌는데, 혼자 작품 앞에 서 있자니 

정말 누군가가 내 앞에 뚜벅뚜벅 걸어와 날 마주한 느낌이 느껴졌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한 경험이었다.

사뮤엘 베케트의 단막극 <크라프의 마지막 단막극>을 주제로 만들었다는 로미 아키투브의 ‘크라프의 마지막 단막극, 2012’는 

설치미술의 한 작품으로써 2,3미터의 높이에서 꿀을 떨어뜨려서 책상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끊임없이 흘러 내려오는 꿀을 보고 있으니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이 연상되기도 했고, 책상을 따라 끈적하게 내려가는 모습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쓰인 꿀은 식용으로, 먹어도 되는 꿀이라고 작가가 말했다고 들었지만, 먹어보지는 못했다.


나오는 길에 전시회에서 받은 소책자를 보니 이 비엔날레의 전체 주제는 ‘Spell on you(너에게 주문을 건다)’라고 적혀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빠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세계와 사회를 마주하고 있고,

이 시대는 우리에게 다양한 플랫폼들은 사회적 소통 및 교류방식이 새롭게 제시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은 이러한 시류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여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문’은 바로 그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영상에 CG를 입힌다던가,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해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이라던가, 

센서를 사용한 작품 등 현대 기술들을 적극 사용해 예술과 결합시킨 작품이 많았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소외감이나, 무의미한 기술의 사용들을 비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초월한 상상력을 동원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재밌고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전시회였다.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를 통해 나에게는 과연 어떠한 주문이 걸렸을까?




+ 본문에 사용된 작품 이미지들은 모두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공식 사이트(http://www.mediacityseoul.kr/)에서 

  가져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왜냐면 사실 이날 아침에 디카를 챙겼어야 하는데 너무 정신없이 학교 가느라 충전까지 해놓은 카메라를 놓고 가는 바람에

  작품사진을 찍지 못했음...ㅠ)